신라황금은 어디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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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서 어떤 가설이라는 것은 예측력이 있어야죠. 예측이 맞으면 그 가설은 맞을 확률이 높아지고, 예측이 틀리면 가설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죠. 반증을 할 수 있는 가설 설정은 과학적 방법에서 핵심이 아닌가 싶어요.
며칠 전에 바비는 가설을 하나 제시했죠. 신라 왕릉에서 출토되는 화려한 금관, 그 재료가 되는 금은 한반도에서는 나올 수 없고 바깥에서 가져올 수 밖에 없었다. 그 금이 나온 곳은 아래 금광 분포도에서 보는 것처럼 지금도 세계에서 금광산이 가장 조밀하게 분포한 하북성 북부를 포함한 중국 동북부(요녕, 만주)일 것이다.


더구나 신라와 백제에서 출토된 금장식품 수공 기술을 보았을 때 오랫동안 금 세공 기술이 축적되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죠. 풍부한 금 공급이 없었다면 이런 세공 기술은 축적될 수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금 세공기술이 발달한 곳은 초기 신라가 있었던 그곳... 금이 너무나 풍부했던 것이겠죠.
얼마나 초기 신라에 금이 많았을까... 뻥은 좀 들어간 것 같지만 아랍인들이 남긴 기록을 한번 보죠.
“개 쇠사슬도 금붙이인 나라”
"아랍인들은 지구상에서 신라가 어디에 있는가를 일찌감치 제대로 알아냈다. 섬과 산이 많은 신라가 중국의 동편, 지구의 동단에 있으며 바다(태평양)로 에워싸여 있다고 9세기 중엽에 나온 한 지리서가 지적한다. 이것은 중국보다 더 동쪽에 신라가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육지의 동단을 오로지 중국으로만 보아 오던 종래의 그리스-로마의 지리관을 타파하고 동방에 관한 새로운 지리지식을 첨가한 엄청난 발견으로 평가된다.
신라의 지리와 관련한 아랍 학자들의 기술에서 특별히 주목을 끄는 것은 중세 아랍 지리학의 거장인 이드리시가 그린 세계지도에 신라가 자리한 사실이다. 그는 전래의 지리지식을 집대성하여 지은 <천애횡단 갈망자의 산책>(1154년)이란 책 속에 한 장의 세계지도와 70장의 지역세분도를 그려넣었다. 그는 아랍의 전통적 ‘7기후대설’에 따라 지구를 7개 지역으로 나누고, 매 지역을 서에서 동으로 다시 10등분하여 각기 지도 한 장씩을 제작함으로써 총 70장의 지역세분도를 완성하였다. 그 제1지역도 제10세분도에 5개 섬으로 구성된 신라를 명기하고 있다. 이 지도는 이때까지 유럽의 세계지도에 처음으로 한국이 등장한 스페인의 벨호 세계지도(1562년 제작)보다 무려 408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 아랍 지도야말로 한국 이름이 적힌 세계지도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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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아랍인들은 이렇게 신라의 위치나 지형뿐만 아니라, 신라의 자연환경에 관해서도 놀라운 기록들을 남겨놓고 있다. 열사에 찌들고 풍랑에 지친 그들에게 산명수려한 자연경관과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지고 있는 신라는 소기의 안주처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신라는 “공기가 맑고 부가 많으며 땅이 기름지고 물이 좋을 뿐만 아니라, 주민의 성격 또한 양순”하기 때문에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떠나지 않고 정착하고야 만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그들의 눈에 비친 신라는 황금이 지천에 깔려 있는, 말 그대로의 ‘황금의 나라’다. 금이 너무나 흔해서 가옥은 금으로 수놓은 천으로 단장하고 금제 식기를 쓰며, 심지어 개의 쇠사슬도 금으로 만든다는 것이 그들이 믿고있는 신라의 황금상이다. "
출처: http://www.hani.co.kr/section-009100030/2004/11/009100030200411291549049.html
이 바비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연역할 수 있는 것은 바비가 지난 글에서 쓴 그대로죠.
“바비가 짐작했을 때는 3세기말 4세기 중엽을 피크로 했다가 점근적으로 감소하는 추세가 아닌가봐요. 무역이 활발한 시기라면 금 보유량이 순간적으로 늘어났을 수도 있겠죠. 길게 갈 것도 없이 신라와 통일신라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금의 양만 가지고도 그래프를 하나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분명 4세기를 피크로 해서 점근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였을 것이라고 바비는 예측해요 (바비 가설은 검정가능하며 예측력이 있어요).”
출처: http://www.history21.org/zb41/zboard.php?id=discuss&page=1&sn1=&divpage=3&sn=on&ss=off&sc=of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1550
쉽게 말해서 초기 신라는 위 금광산분포도에서 금광산이 가장 조밀한 곳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죠. 그러다가 신라 사람들이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경주 부근에 정착하였는데, 이주 하면서 고대에도 귀중품이었던 금을 대량으로 가져고 왔을 것이라는 말이죠. 이 중국 동북부 지역과 무역이 차단되었다면, 금은 더 이상 한반도 바깥에서 유입될 수가 없겠죠. 설령 무역을 통해서 사올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양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봐요.
따라서 한반도 신라에서 보유했던 금양은 금관과 같은 장례용 장식품을 만들면서 점점 줄어갔을 거라는 말이죠. 물론 금은 재생이 가능해서 땅으로 파묻지만 않았다면 그 전체 양은 그렇게 급격히 줄어들지 않았을 수도 있겠죠.

바비가 공부하는 생태학 분야에서는 metapopulation 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그러니까 개체군을 공급하는 지역을 source라고 하고, 개체군이 소비되는 지역을 sink라고 부르죠. 쉽게 말해서 금을 보시면 되겠어요. 신라 금의 source는 중국동북부 지역이고, sink는 경주 지역이죠. 그럼 몇가지 시나리오에 따라 경주 부근 총 금양과 그것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금장식품 출토량의 시대별 변화에 대해 연역을 할 수 있겠죠.
시나리오 1.
만약 신라의 금이 경주 부근이나 한반도에서 공급된 것이라면 고고학적으로 출토되는 금장식품 양을 시대별로 보았을 때 장기적으로는 일정해야하겠죠 오히려 통일신라시대에는 그 영토가 넒어져서 금장식품 출토량은 삼국시대보다 더 많아져야겠죠.
시나리오 2.
바비 가설이 맞다면, 즉 하북성 북부에서 일정량의 금을 경주부근으로 가져왔다고 하면, 한반도에 도래한 초기 신라인들이 가진 총 금양은 제한될 수 밖에 없었겠죠. 그래서 경주 부근으로 정착할 무렵 금장식품이 많이 출토되었다가, 점점 금이 소비되면서 금장식품 출토량은 점점 줄어들어야겠죠.

▲사진설명 : 국보 제138호 가야 금관과 부속구.
자. 그럼 바비 가설을 한번 검정해보도록 하죠.
바비가 인용하죠.
“구체적으로 보면 금관은 마립간 시대(417~514), 즉 눌지 마립간에서 지증 마립간 시기에 집중적으로 출토된다고 합니다[조유전·이기환, 『한국사 미스터리』(황금부엉이 : 2004) 88쪽]. 그러니까 5세기를 전후로 해서 신라의 지배층의 변화가 있었고 그 지배층이 고구려나 백제보다도 유난스러울 만큼 금을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금관(金冠)은 모두 합하여 봐도 10여 점인데 한국에서 출토된 금관이 무려 8점이라고 합니다. 가장 먼저 출토된 금관총의 금관을 비롯, 금령총·서봉총·천마총·황남대총 등 출토지가 분명한 것과 나머지 3개는 경주 교동에서 도굴되어 압수된 교동금관, 호암 미술관 소장 가야금관, 도쿄의 오쿠라 컬렉션(도굴품) 등이 있습니다[조유전·이기환, 앞의 책, 88쪽].
원래 금으로 몸을 치장하는 풍습은 고대 유목민족 사이에 크게 유행한 것이라고 합니다. 흉노족이나 선비족, 거란족의 무덤에서 황금 유물, 또는 머리장식이나 금관 등이 자주 출토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신라나 가야의 고분에서 나타나는 금관은 알타이 문화권인 만주·몽골·알타이·카자흐스탄 등의 지역에서 금으로 장식한 모자가 많이 발견되지만 인디아·태국·인도네시아·라오스·베트남 등과 같은 동남아시아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김병모,『금관의 비밀』(푸른 역사 : 1998)].“
출처: http://blog.joins.com/lless/5491381
어때요? 바비 가설 예측력이요? 4세기와 5세기 차이는 약간 있지만요. 이주해온 사람들이 정착하고 마립간과 같은 권력 체계를 새로 정비하고, 이민 1세대가 죽어서 묻히는데 몇 십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것 정도는 감안해볼 수 있겠죠.
물론 바비 가설은 언제든지 반박가능해요. 역시 21에서도 관심 있는 부분이라면 바비 가설이 틀렸다는 증거를 한번 들어주시면 고맙겠어요.
만약 바비 가설을 반증할 수 없다면, 초기 신라는 지금 중국에서 동베이라고 하는 위 지도에서 금광산이 가장 조밀한 곳에 위치했다고 봐야겠죠.
금광산 분포 패턴, 그리고 금 공급과 소비의 지역적 구분으로 유추한 바비 가설은 문헌과 고고학에 바탕해서 바비와는 독립적인 방법으로 초기 신라 위치를 비정한 산책님이나 다른 삼국 대륙설과도 일치하죠. 또다른 독립적인 방법인 박/라 일식으로 추정한 초기 신라 대륙설과도 일치하죠 (위도 오차를 고려하면).
또 초기 신라에 적용했던 이 공식은 초기 백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죠 (백제 무령왕릉 출토 금장식)




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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